141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모두 같은 날에 태어났어요?” 우리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 해 대답할 수 없었다. 여권을 살펴봤더니 여권 면에 우리 이름을 적은 이집트인 가립 압둘 살리힌 선생이 우리 생일을 전부 1942년 1월 1일로 적었던 것이었고 이로 인해 우리는 웃음거리가 되었다. 우리는 슈와이크 고등학교 12번 숙소에서 지냈다. 시험 시작 전, 내가 싯디끼 디얍 알무사 선생에게 그의 형제인 무함마드 디얍 알무사 선생의 주소가 어디인지 물었다. 싯디끼 선생님은 무함마드 선생이 쿠웨이트의 ‘아부 할리파’ 학교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택시를 빌려 쿠웨이트 시 외곽에 위치한 아부 할리파 학교로 갔다. 그 곳에서 나는 무함마드 디얍 알무사 선생을 만나 물었다. “1956년 사건들이 있었을 때 다른 사람이 아닌 제게 경고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무함마드 디얍 알무사 선생이 대답했다. “너희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술탄 알까시미가 정신적으로 힘들어하고 예전 같지 않다고 내게 알려줬지. 선생님들은 네가 선생님이 교실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든, 심지어 뒤로 가더라도 선생님에게 시선을 고정시킬 정도로 집중하여 수업을 들었다고 했어. 그런데 그 날은 네가 딴 데 정신이 팔려 있었어.” 시험을 순조롭게 치른 후, 교육청은 우리를 버스에 태워 알아흐마디 시범 도시와 석유 시설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걸프 항공에서 대절한 전용기를 타고 쿠웨이트를 떠나 샤르자로 돌아왔다. 비행기는 중간에 바레인에서 급유해야 했고, 우리는 바레인을 단지 경유할 뿐이었다. 우리가 탄 비행기가 바레인에 도착하자마자 보건 담당자가 비행기에 올라 우리에게 보건 카드를 보여달라고 했다. 우리는 그 카드를 찾아봤다.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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