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형이 의사들과 치료 방법을 의논했는데 아버지를 카타르로 이송하기로 결정되었다. 칼리드 형과 나는 비행기를 타고 카타르로 갔다. 나는 카타르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고 샤르자로 돌아와 수업에 들어갔다. 카타르 병원에서는 아버지의 부러진 대퇴골에 깁스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를 베이루트에 있는 알바르비르 병원으로 이송하여 골강에 금속봉을 삽입하는 수술을 하기로 되었다. 1959년 초, 수술이 무사히 끝나서 아버지는 두 발로 걷기까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1959년 2월 4일 새벽, 아버지에게 뇌경색이 왔다. 샤르자 통치자인 셰이크 사끄르 빈 술탄 알까시미가 전보로 내 아버지의 소식을 들었다. 그는 직접 자신의 작은아버지의 용태를 확인하고자 베이루트로 떠났다. 레바논 주재 카타르 정부 대표는 즉각 영국 대사관에 연락하여 긴급 수술이 필요하니 런던의 저명한 외과의를 비행기로 초빙해달라고 요청했다. 1959년 2월 5일 오후 2시 30분, 영국항공 비행기가 베이루트에 도착했다. 그 비행기에는 가이스 (Guys) 병원의 머레이 팔코너(Murray Falconer)라는 영국인 의사가 탑승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 해에 하미드 파란지야(60)에게 유사한 수술을 했던 의사였다. 또한 그를 보조할 의사로 해밀턴 (Hamilton)이 동행했다. 팔코너 선생이 도착한 직후 바로 아버지는 외과 수술을 받았다. 아버지는 의식을 회복했지만 한 쪽 손과 다리에 마비가 왔다. 그 후 아버지는 1959년 3월 초에 샤르자로 돌아와 병상에 누워 계셨다. 샤르자 화재 1959년 3월의 어느 날 오후, 남쪽에서 ‘수하일리’라 불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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