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Early Life (Sard Al That)

179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압드 랍비흐 사끄르가 카타르로 돌아간 후, 바트당 소식통에 따르면 그는 암살당할 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로 돌아가지 않고 카타르에 남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 나는 같은 소식통을 통해 도하 시내에서 인도를 걷던 압드 랍비흐 사끄르가 트럭에 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이 사건에 대해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알까시미야 학교에서 중등과정 2학년을 마친 우리는 쿠웨이트에 있는 알슈와이크 중등학교에서 3, 4학년을 마치기로 결정되었다. 알까시미야 학교에서 학업을 시작하고 쿠웨이트로 전학할 때까지 나는 학년에서 1등이었다. 나는 모든 학생 활동에 참여했고, 보이스카우트에서 두 팀에서 선임하사였으며 학교 축구팀의 주장이었다. 나는 운동회가 열릴 때마다 참여했다. 매 운동회에는 여섯 종목의 경기가 있었다. 나는 100미터 달리기에서 1등, 400미터 달리기에서 2등, 800미터 달리기에서 2등, 그리고 높이뛰기에서 2등, 멀리뛰기에서는 1위, 장애물 달리기에서는 1 등을 했다. 문화 활동으로는 아랍어로 ‘알타깟둠’,(67) 영어로 ‘Progress’라는 게시판 잡지를 제작했다. 나는 두 잡지의 기사 전부를 내가 직접 썼다. 예술 활동에 있어서는 연례 전시회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입체 모형을 제작했다. 한 번은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관개 방식을, 다른 때는 석유의 생산 과정을 그렸다. 또 나는 초등과 중등 과정의 전교 학생들을 위해 모든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알슈와이크 중등학교 1960년 9월 초는 1960-61학년도 새 학기가 시작되는 때였다. 나는 나의 중등 3학년 수업이 쿠웨이트에서 진행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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