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테일러 선생은 이야기를 듣고 웃었다. 나는 그 학교에서 2년 반 동안 일했다. 1961년 2월부터 1963년 9월까지 이어진 그 기간에 샤르자에서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다. 다라(Dara)호 사고 영국-인도 해운회사의 선박 ‘다라’(Dara)호는 두바이 앞 바다에 정박해 있었다. 1961년 4월 7일 저녁, 폭풍이 불어오자 다라호는 닻을 올리고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1961년 4월 8일 이른 아침, 다라호 갑판에서 폭발과 화재가 발생했다. 승객 340명이 구조되고 나머지는 실종자로 집계되었다. 그 중 20명은 아랍에미리트 국민이었다. 빈 배는 조류에 휩쓸려 걸프만 입구 쪽으로 떠내려가다가 1961년 4월 10일 아침에 움알쿠와인 앞 바다에서 침몰했다. 샤르자의 석유 ‘트루셜 코스트 석유관리국’이란 이름이 붙었던 이라크 석유회사는 ‘알사자아’ 지역에서 시추 작업을 하고 있었다. 1961 년 8월 시추 작업이 끝났을 때 샤르자 주민들은 모두 반가워하며 희소식을 기다렸다. 그러나 회사는 알사자아 유정에 석유가 없다고 발표하고, 해저와 육상의 채굴권을 모두 포기한 채 샤르자에 있던 장비를 반출하기 시작했다. 샤르자 주민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로부터 거의 1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기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즉, 1962년 6월 30일, 셰이크 사끄르 빈 술탄 알까시미가 ‘존 메콤’사의 존 메콤(John Mecom) 사장과 시추 협약을 맺음으로써 샤르자에 새로운 희망이 찾아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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