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칼리파 빈 술탄 알합투르의 집 부근까지 경찰들이 우리를 쫓아왔고 작은 무리마저 뿔뿔이 흩어졌다. 나와 밧띠 빈 비슈르가 다이라 시장으로 연결되는 좁은 길로 들어섰는데 길 중간까지 아흐마드 하디드라 불리는 두바이 출신의 경찰이 우리를 쫓아왔다. 체구가 작은 아흐마드 하디드는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밧띠 빈 비슈르와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싸움 도중 아흐마드 하디드의 이깔이 목덜미로 떨어졌고 밧띠 빈 비슈르는 그 끝자락을 내게 건넸다. 그리고는 손바닥으로 아흐마드 하디드를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밧띠 빈 비슈르를 말리면서 아흐마드 하디디를 빼냈다. 그리고 밧띠와 함께 두바이만 해변에 도착할 때까지 길을 계속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오른편으로 싸니 빈 압둘라 아부 까플과 경찰들이 나타났고 왼편으로도 다른 경찰들 무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우리를 향해 덤벼들었다. 우리는 비어 있는 나룻배에 뛰어올라 두바이만으로 나가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밧띠 빈 비슈르가 만 한가운데까지 노를 저었다. 살인자는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희생자의 어머니는 끼사스(70)와 디야(71)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었다. 3국의 통합으로 이뤄진 통일아랍공화국을 향한 열광이 어느 정도인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학생들과 아랍 국민들만 자말 압둘 나세르를 지지한 것이 아니었다. 통일아랍공화국 국기는 택시와 빌딩, 두바이만을 가로질러 왕복하는 보트, 그리고 걸프만에 정박한 선박 등 모든 곳에 게양되었다. 외국인 택시 기사, 왕복 보트에 탄 발루치족, 상선에 탄 파키스탄 선원들의 목에서도 ‘나세르, 나세르”라는 함성이 터져나왔다. 그때 영국은 누구나 다 나세르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다리 부상 1955년 초, 우리는 샤르자에서 열린 두바이 축구팀과 샤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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