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Early Life (Sard Al That)

202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축구팀(샤르자 국제통신회사와 샤르자 항공센터 공공사업부 소속의 직원들로 구성되었다) 간의 축구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다. 경기가 끝나기 전에 선수들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져 즉시 경기가 중단되었다. 그때 나는 경기를 보기 위해 팀을 따라다니고 쉬는 시간에는 공을 가지고 노는 남자 아이들 중 하나였으며 알까시미야 학교에서는 축구팀에서 활동했다. 샤르자 팀이 항공센터의 어느 영국팀과 경기할 때 샤르자팀의 선수 하나가 결장했는데 팀에는 교체 선수가 없었기에 내가 대신 뛰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때 내 나이 열 다섯이었다. 나는 1960년 학업을 위해 쿠웨이트로 유학가기 전까지 그 팀에서 계속 뛰었다. 1961년 쿠웨이트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알잇티파끄”라는 축구팀을 만들었다. 그 팀은 선수 대부분이 외국인이었는데 2년 동안 유지하다가 해체했다. 그리고 나는 1963년 초에 알샤읍클럽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이 클럽의 경기에서 나는 정강이뼈 끄트머리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고 결국 축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샤르자 공업학교 사직 및 학업 복귀 1963년 5월말 공업학교에서의 한 학년이 끝나고 나는 카이로에 갔다가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정형외과 전문의인 무함마드 압둘라 박사를 만났다. 그리고 그에게 정강이뼈 끝에 금이 간 다리의 상태를 보여주었다. 그는 검사와 엑스선 촬영을 마친 뒤 뼈가 그대로 굳어서 이제는 치료해도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내가 카이로로 돌아왔을 때 맹장에 염증이 생겨서 입원 후 맹장 제거 수술을 받아야 했다. 함께 수업을 듣던 동창들을 카이로에서 만났는데, 그들은 모두 카이로대학교 1학년을 거의 마친 상태였다. 지난 10년간 한 교실에서 공부하던 옛 추억이 떠올랐다. 동창들은 내게 카이로에 남아 경찰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할 것을 권유했다. 경찰대학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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