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20명이 모인 소규모 시위가 있었는데, 경찰은 그 시위대와 보조를 맞춰 대표단이 투숙하는 호텔까지 갔다. 시위대 규모가 100명으로 늘어나고 일부가 지나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시위대를 호텔 인근의 문닫은 상점들 앞 공터로 밀어낸 다음 곤봉을 휘둘러 해산시켰다. 시위대는 경찰에 돌을 던지며 맞섰다. 대표단원들은 호텔 뒤쪽에서 일어난 일은 보지 못했지만 예멘과 아덴 출신 노동자들과 샤르자 학생들이 빽빽히 타고 있는 자동차들은 눈으로 보았다. 그들은 ‘자말 압둘 나세르에게 승리를’ 과 ‘제국주의 타도하자’와 같은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대표단이 두바이에서 머문 이틀 동안 두바이 통치자 셰이크 라시드 빈 사이드 알 막툼과 두바이 주재 쿠웨이트 사무소, 두바이 시청 등에서 대표단에게 연회와 다과회를 베풀었다. 또한 카타르 통치자 셰이크 아흐마드 빈 알리 알 싸니도 대표단을 환영하고 공로를 치하했다. 1964년 10월 30일 금요일 이 날은 아랍연맹 대표단이 샤르자를 방문하는 날이었다. 시내 곳곳에 트루셜 오만 군대가 배치되었다. 샤르자의 차량들이 대거 두바이로 가서 대표단과 함께 샤르자로 돌아왔다. 나는 시위대와 함께 시내 입구에서 대표단 행렬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량들이 샤르자의 통치자 셰이크 사끄르 빈 술탄 알까시미의 마즐리스가 있는 영빈관 입구까지 길게 늘어섰다. 나는 차량 중 하나에 올라가 군중을 향해 확성기로 연설했다. 학생들은 교사들의 선창에 따라 함성을 지르고 깃발을 흔들었다. 영빈관 앞 광장과 요새는 샤르자 시민들로 북적였다. 아랍 국가에서 온 사람들과 발루치족과 이란인 노동자들도 함께 있었다. 대표단은 셰이크 사끄르 빈 술탄 알까시미와 만나 필요한 지원에 관해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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