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Early Life (Sard Al That)

240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지금은 그대가 나의 새싹에 물을 주지만 언젠가는 물을 거둬갈 것이기에 오늘은 내 얼굴이 발갛지만 내일이면 강황처럼 누렇게 변하리 나는 그대의 눈매 때문이 아니라 배움과 학문을 위해 왔거늘 우리가 있는 여기는 청결한 곳, 수치와 죄악이 없는 곳 사탄아 사악한 짓을 멈추라, 사람들이 속삭이기 시작한다 그대여, 그 눈매를 파시오, 그대가 나를 사는 것은 안 돼요 2학기에는 모든 과목에서 통과했고 1학년 과목 두 개를 남겨둔 채 2학년이 되었다. 알우루바클럽 1966년 6월 중순, 여름방학이 되어 나는 샤르자로 귀국했다. 알우루바클럽 본부가 다 지어져 있었다. 하지만 부속 시설이 미처 완공되지 않은 상태여서 완공시킨 다음 클럽을 개관했다. 나는 클럽을 통해 ‘각성’(覺醒)이라는 이름의 주간지를 발행하고 인쇄는 두바이의 ‘칼리파 알납부다’ 인쇄소에 맡겼다. 이 잡지는 내가 샤르자에 머무는 동안에 계속 발행되다가 1966년 9월 초에 1966-67 학년도가 시작되어 내가 카이로로 돌아가면서 발간이 중단되었다. 2학년에 내가 수강한 과목 중 하나는 ‘가축학’이었다. 가축은 낙타와 소, 양 등을 뜻하는데, 가축학 수업은 전임 농대 학장이자 학생들과 친근한 관계였던 압둘 라띠프 바드르 알딘 교수가 가르쳤다. 어느 날인가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가축사육연구소에서 공부하던 때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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