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다음 날 나는 라야리라고 불리는 카라치의 가장 가난한 구역으로 갔다. 나는 카라치 서쪽으로 수 킬로미터에 펼쳐진 이 구역에 차를 세워놓고 곳곳을 돌아다녔다. 집들은 양철로 지어진 오막살이였고 길거리는 역겨운 냄새가 나는 하수도가 넘쳐 흘렀다. 알샤르끄 구역의 주택 철거 나는 샤르자로 돌아와서 며칠 있다가 친누이 나이마와 그녀의 아이들, 그리고 셰이크 사우드 빈 술탄 알까시미의 아이들과 함께 인도로 여행가서 몇 주 간 머물렀다. 셰이크 사우드는 함께 가지 못했다. 그는 샤르자 시장으로서 시의 업무, 특히 알샤르끄 구역의 주민 문제로 여행할 겨를이 없었다. 샤르자로 돌아온 뒤 나는 알샤르끄 문제에 관해 셰이크 사우드 빈 술탄 알까시미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나에게 시청의 국장인 무크타르 알타움, 도시계획 책임자인 바티야 알힌디, 그리고 토지국장 이브라힘 알쿠르디가 알샤르끄 구역에서 보상을 해주지 않고 주택 40채를 철거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에 주민들이 철거에 반대하며 두바이로 이주해버리겠다고 위협했다고 덧붙였다. 나는 샤르자의 통치자인 셰이크 칼리드를 만나서 보상에 소요되는 재원이 마련될 때까지 철거 계획을 늦추라고 설득했다. 이는 곧 집을 철거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나는 철거 대상 주택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연락해 두바이로 이주한다는 계획을 재고하라고 설득했다. 나와 그들 사이 관계는 우호적이었다. 그 구역에 있는 공업학교 교사로 3년간 일했기 때문이었다. 라주글리 나는 2학년(1967-68학년도) 과목들 중 남은 과목을 끝마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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