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Early Life (Sard Al That)

282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아부 무사 섬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샤르자의 통치자 셰이크 칼리드와 이란의 샤로 하여금 서둘러 해법을 마련하게 했다. 아부 무사 섬의 미래에 관해 영국 특사 윌리엄 루스 경은 1971년 5월에 이미 섬의 지위에 관한 성명서 작성을 완료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란의 완고한 태도가 아부 무사 문제에 대한 논의의 중단을 초래했다. 셰이크 칼리드는 1971년 8월 18일 아랍 각국 정상 전원에게 서한을 보내 아부 무사 섬의 지위에 관해 영국과 이란이 합의한 내용을 공개했다. 셰이크 칼리드의 서한에 답신을 보낸 사람은 자으파르 알누메이리 수단 대통령 뿐이었다. 그는 합의 도달을 축하했다. 한편, 파이살 빈 압둘 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은 이란과의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후세인 요르단 국왕은 요르단이 아랍과 이란의 관계 개선을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압둘 칼리끄 핫수나 아랍연맹 사무총장은 아랍 각국 정부가 이란 정부와 소통해야 한다는 반응이었다. 셰이크 칼리드는 나에게 파이살 국왕의 편지 사본을 아부다비의 통치자 셰이크 자이드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나는 1971년 10 월 15일 아부다비로 가서 ‘알만할’ 궁에 있는 집무실에서 아흐마드 빈 칼리파 알수와이디를 만났다. 이 자리에는 당시 아부다비의 치안을 담당하는 책임자 중 하나였던 함무다 빈 알리도 참석했다. 셰이크 자이드와의 면담은 다음날 아침로 정해졌으며 나는 면담 시간까지 영빈관에서 머물렀다. 그날 밤 움무 쿨쑴이 공연하는 파티가 열렸다. 셰이크 자이드의 즉위를 기념하는 자리라고들 했다. 아흐마드 알수와이디가 참석을 권하기에 나도 참석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아흐마드 알수와이디와 함께 셰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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