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Early Life (Sard Al That)

283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자이드를 만나기 위해 갔다. 면담은 셰이크 자이드가 방문 중이던 그의 어머니 집에서 이루어졌다. 내가 셰이크 자이드를 만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파이살 국왕의 서한 사본을 전달했다. 셰이크 자이드는 편지를 읽은 뒤 아흐마드 알수와이디가 배석한 가운데 나와 환담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셰이크 자이드가 아부 무사 섬 문제의 진척 상황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느꼈다. 며칠 뒤에 파이살 국왕의 서한을 이집트 정부에 전달하는 임무가 떨어졌다. 이집트에서는 마흐무드 리야드 이집트 외무장관을 만나 파이살 사우디 국왕의 서한 사본을 전달했다. 1971년 10월 말, 내가 카이로에서 돌아왔다. 타르얌 빈 우므란과 압둘라 빈 우므란 형제가 샤르자에서 설립하고 허가받은 다음 쿠웨이트에서 인쇄하는 ‘알칼리즈’ 신문이 11월 1일자로 셰이크 칼리드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가 아부 무사 섬의 미래 문제에 관해 영국 특사 윌리엄 루스 경과 비밀리에 논의한 회담 내용 일부를 보도했다. 아울러 신문은 셰이크 칼리드의 성명도 실었다. 신문 1 면의 제목은 이러했다. ‘셰이크 칼리드, 아부 무사 섬의 미래에 관한 영국 특사 윌리엄 루스 경의 제안을 강하게 거부하다’ 이미 인쇄가 완료된 11월 1일자 알칼리즈 신문을 몰수하라는 요청이 쿠웨이트 공보부로 들어왔다. 발행된 4천부는 결국 폐기됐다. 하지만 통신사들은 알칼리즈가 보도한 소식을 앞다투어 타전했고, 같은 내용이 알칼리즈 11월 2일자에 다시 실렸다. 그날 저녁 이 사실을 알게 된 윌리엄 루스 경은 격노했다. 그는 셰이크 칼리드에게 연락해 알칼리즈의 발행 허가를 즉각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셰이크 칼리드는 발행 허가 취소는 국내 치안 문제를 초래할 것이므로 곤란하다는 전제 하에 앞으로 아부 무사 섬에 관한 어떠한 기사도 내지 못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압둘라 빈 우므란은 그날 저녁 셰이크 칼리드 앞에서 아부 무사에 관한 기사를 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알칼리즈의 발행 허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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