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아버지, 샤르자에서 추방되다 며칠 후 오전 시간에 아버지가 집에 오셔서 어머니에게 가방에 옷을 넣어 가져오라고 부탁했다. 내가 아버지에게 어디 가시느냐고 물으니 대답했다. “영국인들이 셰이크 술탄 빈 살림 대신 나를 바레인으로 보내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샤르자에서 펠리는 낯선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1년 반 전에 샤르자 주재 영국 정치장교였다. 그는 나의 아버지 셰이크 무함마드 빈 사끄르 알까시미를 정말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1931년 샤르자에 항공센터를 건설하는 안에 반대했다. 아버지의 요구는 항공센터가 군사비행장이 아니라 민간 공항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영국이 항공센터를 건설하기 위해 땅에 그려 놓은 표시들을 모두 지웠다. 이에 당시 영국인들은 아버지를 추방하기로 결정했다. 영국이 아버지가 제시한 조건, 즉 샤르자의 독립을 보장하고 샤르자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라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그때 벌써 추방되었을 것이었다.[*] 영국은 샤르자 통치자인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에게 동생 셰이크 무함마드 빈 사끄르를 추방하는 안에 동의하라고 압박했다. 필수적인 것들을 제외한 식품이나 물건, 이동 수단 등을 제공하면 안 된다는 조건도 붙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형의 명령에 복종하고 바레인을 향해 떠났다. 아버지의 출국에 나의 큰형 칼리드와 친구인 우므란 빈 타르얌이 동행했다. 아버지는 바레인에서 수 주 동안 셰이크 살만 빈 하마드 알 칼리파의 빈객으로 머물다가 동행자들과 함께 샤르자로 귀환했다. [*] 저자의 책 『동양과 서양의 관계에서 본 샤르자 항공센터』를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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