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호전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샤르자의 가족들은 물론이고 전 시민들이 희소식이라며 기뻐했다. 그러나 1951년 3월 23일, 셰이크 술탄이 세상을 떠났다. 알라께서 그에게 자비를 베푸시기를. 런던 클리닉에서 수술을 받은 후였다. 장례는 샤르자에서 치르기로 결정되었다. 셰이크 무함마드 빈 사끄르 알까시미, 샤르자의 통치자가 되다 내 아버지 셰이크 무함마드 빈 사끄르 알까시미는 큰아버지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가 인도와 영국에 가서 치료받느라 부재하는 2년 동안 큰아버지의 대리인이자 큰아버지가 샤르자의 통치자로 즉위한 이래 줄곧 부통치자였다. 또한 아버지는 샤르자의 치안 책임자이자 난국을 극복하는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샤르자의 통치자 셰이크 술탄이 서거하자마자 통치자 지위가 아버지에게 승계되었다. 1951년 3월 23일의 일이었다. 아버지는 1951년 3월 24일 토요일에 구름처럼 모여 조문하는 시민들을 맞았다. 1951년 3월 25일, 아버지는 많은 통치자들과 셰이크들에게 서한을 보내 자신이 고(故)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에 이어 샤르자의 통치자임을 선포했다. 1951년 3월 26일, 돌아가신 통치자의 아들이자 나의 사촌형인 셰이크 사끄르는 샤르자 주재 영국 정치국으로 가서 정치장교 미스터 윌튼(A. J. Wilton)을 만났다. 셰이크 사끄르는 자신의 작은아버지, 즉 나의 아버지가 알까시미 가문과 샤르자 국민의 여망을 배신한 채 셰이크 술탄 빈 살림 알까시미와 알미드파으 가문과 야합한 후 교묘한 계략과 속임수를 써서 후계자 지위를 찬탈했다고 주장했다. 윌튼은 통치자 지위 승계가 자연스럽고 평온하게 이루어졌다고 대답하고, 셰이크 사끄르에게 주장을 입증할만한 증거가 있느냐고 물었다. 셰이크 사끄르는 중요한 것은 보편적인 상식이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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