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살림 알까시미도 참석하고, 고인이 된 샤르자의 전 통치자 셰이크 술탄의 장관 이브라힘 빈 무함마드 알미드파으도 왔다. 그리고 영국 정치장교 윌튼(Wilton)도 와서 조문했다. 1951년 3월 29일, 가문 사람들 전원이 집합했다. 셰이크 술탄 빈 살림 알까시미와 이브라힘 알미드파으도 참석했다. 샤르자 주재 영국 정치국장 윌튼이 바레인 주재 영국 정치국장 C. J. 펠리의 조문을 전달하려고 다시 왔다. 이브라힘 빈 무함마드 알미드파으가 일어나서 고 셰이크 술탄을 칭송하는 애도 연설을 했다. 그는 셰이크 무함마드가 이전의 노선을 계승하고 대영제국 국왕 폐하 정부와 충실한 협력과 유익한 우호관계를 증진하기를 바란다며 연설을 마쳤다. 영국 정치국장이 나갈 때 셰이크 무함마드는 조문 서한을 보내준 바레인 주재 영국 정치국장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또한 모든 면에서 영국 정부와 진지하게 협력하고 싶다는 바람도 함께 전해달라고 요청했다. 셰이크 사끄르도 모든 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영국 정치국장에게 변함없는 감정을 표현하고 선친의 시신의 귀환과 매장에 관해 물은 것 외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런던에서 고인의 시신 염습과 수의 입히기, 샤르자로 이송하기 위한 입관 등의 절차가 진행되었다. 1951년 3월 30일, 고 셰이크 술탄의 두 아들 칼리드와 무함마드가 고인이 된 선친의 시신을 이송하기 위해 런던 클리닉에 도착했다. 런던에서 샤르자로의 이송에는 샤르자의 석유채굴권을 보유한 이라크석유회사롤 통해 전세낸 비행기가 사용되었다. 일반 사람들은 이 회사를 사장의 이름을 따서 ‘레르미트’(Lermitte)사라고 불렀다. 두 아들과 동행한 사람은 무니르 샴마라는 이름의 아랍인이었다. 그는 영국방송사 BBC의 중동지역 서비스 직원이었으며 통역을 맡았다가 같은 비행기로 런던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칼리드와 무함마드를 배웅하는 자리에 로즈(C. M. Rose)가 와 있었다. 그는 런던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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