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Early Life (Sard Al That)

68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상여로 옮겨졌다. 고인을 위한 기도를 올린 후 사람들이 상여를 어깨에 메고 알주바일 묘지로 운구했다. 많은 사람들과 고인의 형제들과 그 자식들이 장례행렬을 따라갔다. 그 중에 나도 있었다. 우리의 눈이 눈물로 가득한 가운데 시신이 묘지에 도착했다. 시신이 상여에서 내려져 미리 준비된 묘소로 옮겨졌다. 이 때 상여에 피가 흘러 있었다. 나는 내 눈으로 시신의 복부가 있던 자리에 묻은 피를 보았다. 시신은 안장될 구덩이 전면의 묘소 앞에 놓였다. 나의 아버지가 묘소로 내려가서 옆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수의를 맨 끈을 느슨하게 풀었다.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시신으로 다가갔다. 매장 의식이 끝나고 사람들은 조문하기 위해 요새로 갔다. 그날은 남쪽에서 ‘수하일리’ 바람이 불고 먼지가 날리는 음산한 날이었다. 사람들은 그날처럼 먼지가 날리는 것은 불길한 징조라고 믿었다. 정말로 그랬다. 통치권 분쟁 매장 의식이 끝난 뒤 조문을 받기 위해 모두가 요새로 갔다. 샤르자 주재 영국 정치국장 윌튼이 바레인 주재 영국 정치국장에게 다음과 같은 서한을 보냈다. “내가 4월 2일에 두바이에서 걸프지역 정치총독 각하를 방문하고 돌아왔을 때 나는 장례 의식이 같은 날 아침에 끝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칼리드와 무함마드는 런던에서 선친의 시신을 운구해 온 바 있습니다. 두 사람은 지체없이 사끄르와 나를 기다렸고, 사끄르가 아직도 통치자 지위를 승계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사끄르가 해야만 할 것 외에 다른 해결책은 받아들일 의사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윌튼은 또한 이렇게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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