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샤르자에 뜨거운 7일이 지나갔다. 셰이크 사끄르 빈 술탄과 그 형제들은 요새에 집결해 있고 셰이크 무함마드 빈 사끄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집에 모여 있었다. - 1951년 4월 12일 목요일, 셰이크들이 정확히 오전 9시 반에 샤르자 영국 정치국에 도착했다. 셰이크 마지드, 셰이크 후마이드, 셰이크 라시드, 셰이크 칼리드 빈 칼리드 등이 윌튼을 만나러 간 것이었다. 면담은 사안을 영국 정부에 일임한다고 참석자 전원의 이름으로 발표하는 것으로 끝났다. 이에 윌튼은 알까시미 가문 사람들 전원을 영국 정치국으로 초치하겠다고 결정했다. - 1951년 4월 13일 금요일, 아침에 분쟁 당사자 두 사람을 제외하고 알까시미 가문 사람 전원이 영국 정치국에 가서 윌튼을 만났다. 그는 결정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가문 사람들에서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윌튼은 셰이크 무함마드 빈 살림을 그들과 함께 있게 하고 자리를 떴다. 가문 사람들이 스스로 결론을 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기도 시간이 되어도 그들은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했다. 단,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는 사람이 통치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윌튼은 바레인의 영국 정치총독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가문이 사끄르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고 무함마드도 물러나기를 거부하면 나는 사안을 어떻게 끌어가야 할 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이같은 상황이라면 우리가 사끄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무함마드와는 여하한 접촉도 거부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입니다. 무함마드는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 개연성이 있습니다.” - 1951년 4월 14일 토요일, 셰이크 사끄르 빈 술탄은 자신의 숙부들 누구도 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못하며, 가문 회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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