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Early Life (Sard Al That)

80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것처럼 보였지만 안쪽으로 밀었더니 열렸다. 선생 집은 방이 하나였는데 그 방문이 열려 있었다. 방에 들어갔더니 선생이 벽에 기댄 채 다리를 앞으로 뻗고,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그를 불렀다. “파딜 선생님, 파딜 선생님.” 대답이 없었다. 내가 선생을 한 쪽 다리를 잡고 흔들었다.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 “돌아가셨다. 파딜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나는 학교로 돌아가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파딜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파딜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아흐마드 아부 루하이마 교장 선생 앞에 가서 말했다. “파딜 선생님이 돌아가셨어요.” 교장 선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교사들을 불렀다. 교사들이 파딜 선생 집으로 향해 갔다. 그들은 선생을 씻기고 수의를 입힌 후 시신을 알까시미야 학교 앞에 있는 ‘알바두우’ 모스크로 옮겼다. 그 날 정오 기도가 끝난 뒤에 교사들과 학생들과 일반 사람들이 그를 위한 장례기도를 올렸다. 사람들이 파딜 선생의 시신을 매장지로 운구했다. 학생들은 그날 오후 수업이 휴강되었다. 1952년 3월, 쿠웨이트 교육 대표단이 샤르자의 알까시미야 학교를 방문했다. 쿠웨이트의 유명한 상인인 유수프 풀라이즈를 대표로 하는 이 대표단은 우리 학교의 교육 수준과 학생 수를 알아보러 왔다. 대표단 환영식이 열리고 시 낭송과 연설이 있었다. 나는 나스르 알따이 선생님이 영어로 써 준 인사말을 읽었다. 참석자들이 나의 인사말에 흡족해 했다. 1952년 4월, 영어 교사 나스르 알따이가 부적절한 행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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