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보았다. 그는 몸짓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나’라는 의미로 집게 손가락으로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그리고나서 ‘간다’라는 의미로 집게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밑으로 향하게 하고 반복적으로 엇갈리게 음직였다. 이어서 가운데 손가락을 집게 손가락 위에 포개고 아랫배 근처에서 앞뒤로 움직였다. 소변본다는 뜻이었다. 아이들이 다같이 웃었다. 한 아이가 말했다. “얘들아, 영어로 웃어라.” 이 말을 한 아이는 벌을 섰다. 어느 날 나스르 선생이 4학년인 사우드 빈 술탄 알까시미의 손을 때리는 벌을 주었다. 사우드 빈 술탄 알까시미는 자신의 형인 샤르자 통치자 셰이크 사끄르 빈 술탄 알까시미에게 나스르 선생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고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일러바쳤다. 나스르 선생은 학교에서 쫒겨나고 샤르자에서도 쫒겨났다. 알까시미야 학교의 수업이 몇 주 남아 있을 때였다. 샤르자 주재 영국 정치국의 부정치장교 벅 마스터(Buck Master)가 밤 시간에 우리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겠다고 자원했다. 그러나 오래 계속하지 못하고 자심 빈 무함마드 빈 자심이라는 당시 영국 정치국에서 일하던 직원으로 교체됐다. 그러나 그마저도 오래 하지 못했다. 이 같은 일이 있었던 것은 학교가 문을 닫고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1952년 5월 말이 가까워진 시점이었다. 우리는 여름방학을 라스 알카이마의 알굽브에 가서 지냈다. 그 해 여름에는 마따르 파이루즈가 리야드에서 돌아와 우리와 함께 있었다. 그는 리야드의 한 대학에서 이슬람법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고아인 마따르 파이루즈가 1935년 말에 천연두에 걸렸다. 천연두가 샤르자를 비롯한 다른 토후국에 돌 때, 마따르도 천연두 환자들을 수용하는 격리소로 가게 되었다. 이를 알게 된 나의 아버지가 마따르를 우리 집에 데리고 있겠다고 나섰다.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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