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Early Life (Sard Al That)

84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아흐마드 빈 무함마드 아부 루하이마 교장의 동생인 알리 빈 무함마드 아부 루하이마는 우리 학년에서 가장 나이 많은 학생이었다. 그러던 그가 5학년 담당 교사가 되고, 나를 포함하여 4학년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그의 제자가 되었다. 결국 가까운 친구들 중 나만 동급생 친구들과 함께 5학년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알리 아부 루하이마 선생은 알까시미야 학교 최초로 희곡을 쓰고 직접 연기도 맡았다. 연극 제목은 ‘나무꾼과 술탄의 딸’이었다. 알까시미야 학교 건물은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가 이스마일 알부라이미로부터 집을 구입해서 학교로 사용했다.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가 세상을 떠난 후, 미망인인 셰이카 미라 빈트 무함마드 알수와이디가 학교 건물을 상속했다. 그녀는 건물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알슈유크 구역에 무함마드 빈 알리 빈 카밀 소유의 큰 건물이 있었다. 그의 딸이자 살림 빈 압둘 라흐만 알미드파으의 어머니가 이 건물에서 사망하였다. 그래서 무함마드 빈 카밀이 그 집을 떠나 다른 집으로 이사갔다. 이에 셰이크 사끄르 빈 술탄 알까시미가 그 집을 구입한 후 학교를 그곳으로 옮겼다. 여학교는 그 집의 북쪽 부분을 대추야자나무 잎 울타리로 분리해 사용했다. 교장은 바레인에서 초빙된 이스마일 선생이었다. 이스마일 교장은 나이가 많은 학생들에게 짧은 바지를 입게 했다. 그는 그들을 데리고 샤르자 시내의 거리를 돌아다니고 오후에 주민들이 있는 데서 운동 연습을 했다. 주민들이 그 광경을 구경하러 모여들었다. 그러자 샤르자 주민들 중 보수적인 사람들이 항의하고 그들 중 일부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교장에게 학생들의 오후 수업 활동을 없애고 체육은 학교에서 정식 수업시간에 하라는 지시가 하달됐다. 여학생들은 학교의 일부에 대추야자나무 잎으로 울타리를 세워 남학생들과 분리했다. 1953년 초, 두 여성이 오만에서 샤르자로 왔다. 그 중 한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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