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Al-Qasimi Publications 2023 셰이크 술탄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 박사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역자 박재원
저서명: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My Early Life) 저자: 셰이크 술탄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 박사 * 역자: 박재원 * 출판사: 알까시미출판 주소: 아랍에미리트연합 샤르자 사서함 64009, info@aqp.ae 전화: +971 6 5090000 팩스: +971 6 5520070 © 알까시미출판, 인쇄 출판 배급 초판 샤르자 2009년 11월 6판(개정증보판) 샤르자 2021년 * ISBN 978-9948-788-20-1
머리말 11 제 1장 유년 시절 13 우리 집 16 큰아버지가 살던 폐가 18 샤르자 요새 20 제2장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 27 명절날 29 알팔라즈 농장 31 셰이크 술탄, 라스 알카이마 문제를 중재하다 32 영국인 총격 사건 43 아버지, 샤르자에서 추방되다 46 알이슬라흐 알까시미야 학교 47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의 투병 48 제 3장 샤르자의 부통치자 53 사고 55 샤암 피서지 56 나의 학교 58 노상강도 61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의 서거 62 셰이크 무함마드 빈 사끄르 알까시미, 샤르자의 통치자가 되다 63 망자의 시신 안장 67 통치권 분쟁 68 셰이크 사끄르 빈 술탄 알까시미, 샤르자의 통치자가 되다 71 제 4장 샤르자의 교육 과정 75 1단계: 1951-52학년도 77 2단계: 1952-53학년도 83 3단계: 1953-54학년도 86 4단계: 1954-55학년도 89 5단계: 1955-56학년도 89 샤르자 스카우트단, 쿠웨이트 제 10회 스카우트 캠프에 참가하다 90 사설 영어 학원 94 내용물
제5장 순례 101 바레인 103 알담맘 107 젯다 108 성지 메디나 110 성지 메카 111 제 6장 3국의 이집트 침공 117 정찰 119 첫 번째 작전 123 두 번째 작전 126 세 번째 작전 126 네 번째 작전 129 새벽 기도 133 제 7장 샤르자에서 일어난 사건들 137 교사들의 해고 139 쿠웨이트에서 치른 중등과정 시험 140 빗나간 총알 144 부모님과 떨어져 살기 148 샤르자 화재 150 샤르자 전투기 추락사고 151 제 8장 이란 여행 153 린가로 가는 해상 여행 155 시라즈로 가는 길 158 테헤란 166 카스피해 169 테헤란에 이스라엘 사무소 개소 170 제9장 바트당 173 바트당 세포조직 177 알슈와이크 중등학교 179 바트당 탈당 182 쿠웨이트 학교 자퇴 186 제 10장 샤르자 공업학교 교사 189 다라(Dara)호 사고 193 샤르자의 석유 193 아버지의 별세 194
7 샤르자의 통치자 셰이크 사끄르 빈 술탄 알까시미와 형제들 195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3국의 통합 195 다리 부상 201 샤르자 공업학교 사직 및 학업 복귀 202 제 11장 샤르자에 밀려온 아랍민족주의의 물결 205 시온주의의 하수인들 207 아랍연맹 대표단 208 아랍연맹 기술대표단 212 영국 국무장관과 아랍연맹 사무차장 216 샤르자의 통치자와 영국 국무장관의 만남 219 셰이크 사끄르의 축출과 셰이크 칼리드의 즉위 223 시장(市長) 226 제 12장 대학 생활 1부 231 우연한 만남이 천 번의 약속보다 낫다 233 왕수(王水) 235 이유없는 웃음 238 미녀와 칠판 239 알우루바클럽 240 이집트 대통령궁 241 자전거 242 1967년 6월 전쟁 243 카라치 여행 246 알샤르끄 구역의 주택 철거 247 라주글리 247 압둘 아지즈, 코르 팍칸의 부(副)통치자가 되다 249 내가 샤르자의 부통치자가 되다 251 제 13장 대학 생활 2부 257 알까라파 묘지와 마즈라 알우윤 259 신실한 자들의 땅 이집트 260 오만학생회 261 블랙리스트 263 샤르자 요새 철거 267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 270 이스라엘 첩자 271 시한폭탄 폭발 275
제 14장 조국 277 통치자 각하의 실장 280 아부 무사 협정 284 국가의 탄생 285 어려운 나날 285 각주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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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머리말 나는 내 사람들의 삶과 내 나라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9년에 걸쳐 이 글을 썼다. 허망하거나 어지러운 말을 피하고 이야기 체로 쓴 다음 나 자신의 이야기라고 제목을 붙였다. 이야기한다는 것은 맥락을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이고, 이야기를 통해 자신에 대해 말하고 또 알게 된다. 나는 우리가 아끼고 사랑한 사람들의 사건과 일화들의 많은 부분을 내 이야기에서 제외했다. 그를 언급하면 알라께서 가려주신 허물을 다시 소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고인이 된 사람들의 좋은 점들을 기억하라” 고 했다. 알라께서 우리와 그들 모두를 용서하시길 기원한다. 저자
13 제 1장 유년 시절
15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나는 이슬람력 1358년 5월 14일, 서력 1939년 7월 2일 일요일에 태어났다. 나는 내 나이 다섯 살이 채 되기 전부터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1944년 봄이었다. 제2 차 세계 대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영국군과 영국 전투기들이 당시 샤르자에 있던 항공센터 산하의 영국군 부대에 집결해 있었다. 미국은 훈련을 위해 팔레스타인의 알랏드(1)와 이라크의 알합바니야(2), 바레인, 샤르자 등지에 군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추후 그 군대를 북아프리카에 배치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1944년 초, 미군 공병대가 샤르자에 들어왔다. 그들은 샤르자 영국군 부대 동쪽에 미 육군 훈련소를 건설했다. 미군은 샤르자에 1944년 5월 초부터 주둔하기 시작했다. 샤르자의 통치자이던 나의 큰아버지는 당시 인도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아버지가 큰아버지를 대리하는 부(副) 통치자 자격으로 미군 사령관[*]을 방문했다. 사령관은 미군 부대를 한 바퀴 돌며 우리에게 구경시켜 주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더러 무개(無蓋) 수륙양용차를 타보자고 했다. 나는 아버지와 사령관 사이에 앉았다. 나의 형인 칼리드와 우므란 빈 타르얌, 그리고 미군 병사 한 명은 뒷자리에 앉았다. [*]. 나는 이 사령관을 1974년에 뉴욕에서 재회했다.
16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수륙양용차는 샤르자 시내를 지나 샤르자만(灣)에서 멈췄다. 그러더니 배로 변하여 해안에서 땅으로 바닷물을 건넜다. 이 땅은 만과 탁 트인 바다를 가르는, 혀처럼 길쭉한 모양의 모래톱이었다. 수륙양용차는 다시 자동차로 바뀌어 파도가 치는 바닷가로 나갔다. 거기서 배로 변하더니 파도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며 나아갔다. 넓은 바다에 이르렀을 때 나는 어지럽고 구토가 나서 사령관의 군복에 토사물을 쏟았다. 화가 난 사령관은 해상 산책을 취소하고 키를 돌려 샤르자 쪽으로 돌아왔다. 1944년 9월 8일, 전투기 한 대가 샤르자의 알라야 마을 부근 바다에 추락했다. 샤르자 공항에서 이륙하여 고도를 높이던 영국 공군기였다. 높이 상승하지 못하고 바다로 떨어진 것이었다. 기내에 있던 병사들은 구조되었다. 내가 칼리드 형과 함께 해안으로 갔을 때 파도가 색연필들을 추락 지점에서 가까운 모래밭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형이 내게 색연필을 주워주었다. 우리 집 우리는 큰아버지인 셰이크(3) 술탄 빈 싸끄르 알까시미(4)의 집과 붙은 옆집에서 살았다. 그 집은 그의 아내이자 나의 큰어머니인 라띠파 빈트 사이드의 집이었다. 큰아버지 집과 우리 집 사이에 대추야자나무의 잎으로 엮은 울타리와 두 집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문이 있었다. 큰아버지 집에 큰아버지와 그 가족이 함께 살고 있는 모습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큰아버지의 두 딸, 앗자와 알야가 죽은 게 그 집에서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즉 나와 사촌형제들이 대추야자나무 잎 울타리에 구멍을 내고 양쪽 집 사이를 기어서 넘나들던 기억이 있다. 그 때의 사촌들은 나보다 형인 압둘라와 동생인 사우드였다. 나는 그 구멍을 볼 때면 무섭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집 한켠의 화장실에서 나와 다른 쪽에 있는 사촌 자매의 방으로 달려가
17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자매를 죽인 진니(5)의 미흐마스(6) 손잡이 같은 두 다리가 헛것처럼 보이곤 했다. 큰아버지는 이 집을 떠나면서 급히 대추야자나무 잎으로 새 집을 지으라고 명했다. 대추야자나무 잎 울타리는 큰아버지가 떠난 빈 집과 사람이 사는 아버지 집 사이를 가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친척과 이웃, 종, 하인 등 딸린 식구들이 많았다. 아버지의 마즐리스(7)에 손님들이 모여들었다. 큰 마즐리스는 일반 사람들을 만나는 곳이었고 작은 마즐리스는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단 하루도 우리 집에서 잔치가 벌어지지 않은 날이 없었다. 음식을 가득 담은 접시들이 세 개의 문에서 나오고, 일반 마즐리스 밖에 놓인 긴 의자들로도 음식이 날라졌다. 제 2차 세계 대전 때문에 먹을 것이 부족한 시절이어서 배고픈 사람들이 대거 몰려든 것이었다. 우리 집의 서쪽 문 앞으로 작은 마당이 있고 마당 주위에 내 숙부 (8)들의 집과 락카드의 아들인 이브라힘과 알리가 사는 작은 집이 있었다. 그리고 이 작은 집 뒷편에 또 다른 작은 뜰이 있었다. 이 뜰 가까이에 울타리가 무너진 집도 있었는데, 이 집에서 커다란 창고가 앞으로 툭 튀어나와 있었다. 이 창고의 문은 마당을 향해 항상 열려 있었다. 사람들은 이 집을 알두와이시의 집이라고 불렀다. 나의 작은아버지 마지드는 한 미치광이 젊은이를 쇠사슬로 묶어 바위에 고정한 후 이 집에 있게 했다. 미치광이는 누군가가 창고 근처를 지나가는 기척을 느끼면 문으로 달려가 고함을 치곤 했다. 행인들은 미치광이가 풀려 있다고 생각하다가 쇠사슬에 걸려 창고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마당 가운데에 난 길을 따라 창고 옆을 지나면 모스크나 시장으로 갈 수 있고, 종교 교사인 파리스 빈 압둘 라흐만 선생의 집으로 갈 수도 있었다. 파리스 빈 압둘 라흐만은 나즈드(9) 출신으로서 모스크의 이맘이자 자신의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파리스 선생의 집은 우리 집안의 집들에서 가까웠다. 그러나 나는 미치광이가 풀려날까봐 두려워서 파리스의 집에 가지
18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못했다. 어느 날, 밤 사이에 미치광이가 사라지더니 알두와이시의 집에 울타리가 세워지고 결국 작은아버지 마지드의 집에 합쳐졌다. 이로써 공포가 진정되었으나 파리스 선생의 집에 갈 때면 망설이기를 계속했다. 코란 공부를 모두 수료한 후 선생이 “알함두 릴라히”(10)라고 말하면 그 학생은 학교를 졸업한다. 아이들에게는 새 옷이나 깨끗한 옷을 입히고, 지체 높은 셰이크나 부잣집 아이들은 황금 단도를 차고 구트라와 이깔(11)을 썼다. 졸업자 가운데 하나가 학우들과 함께 나오고 선생님이나 그 대리인이 인도한다. 대표가 기도를 암송하면 뒤에 선 아이들이 고함치는 것 같은 큰 소리로 “ 아민”이라 외친다. 선생이나 그 대리인은 집집마다 돌며 헌금을 거둔다. 셰이크와 부자집의 여자아이들은 머리와 가슴에 금붙이를 달고 헨나로 손을 물들인다. 우리 집 동쪽 문은 마당을 향해 있었는데 여자아이들은 그 마당에서 밤늦게까지 즐겨 놀았다. 큰아버지가 살던 폐가 큰아버지가 떠나간 폐가와 우리 집 사이에 있던 울타리가 쓰러져서 수리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나의 아버지는 그 울타리 치워버리라고 지시했다. 여러 해가 지나 폐가의 큰 방에 우리 집 쪽으로 문을 내고 폐가 쪽을 향해 있는 우리 집 대문을 폐쇄하기로 되었다. 어른들은 내 여동생 나이마를 돌보는 주마이아라는 이름의 여자를 창고에서 살게 했다. 그리고 그 옆의 다른 방을 소와 양의 사료를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했다. 아버지의 집사 은딩기는 키가 큰 아프리카 남자였는데 자주 나를 무동태우고 놀아주었다. 그는 사료를 담당했다. 주마이아가 병에 걸려 낫지 않다가 그 창고에서
19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죽었다. 그리고 은등기도 내가 부르러 갔었는데 창고로 개조한 방의 가축용 사료 위에서 죽어 있었다. 그 시절 아버지의 경호원인 아이드 빈 쿠사이프가 마르얌이란 여자와 결혼한 후 우리 집의 동쪽 문 앞마당에 대추야자나무 잎으로 아내의 집을 지어주었다. 그는 자신의 집 울타리를 큰아버지 셰이크 술탄 빈 싸끄르 알까시미의 폐가 울타리 화장실 쪽에 붙여 냈다. 화장실은 진니가 사는 곳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집에 사는 동안 한 번도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조용하던 마르얌이 마녀처럼 변해갔다. 드러난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고 눈은 초점을 잃은 채 헤매며 큰 소리로 고함치고 입꼬리로 거품을 흘렸다. 남자 둘이 그녀의 양쪽 손을 잡아당기니 그녀는 십자가에 달린 것 같은 자세가 되었다. 다른 남자가 그녀의 등을 채찍으로 세게 때리며 큰 소리로 진니를 불렀다. “나가라, 나가라, 나가라!” 그녀가 두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녀의 눈이 내 눈과 마주치자 나는 진니가 그녀의 눈에서 나와 내 눈으로 들어올 것 같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러나 그녀의 속눈썹이 눈을 덮더니 머리가 가슴으로 떨구어졌다. 채찍을 든 남자가 고함치며 그녀를 때렸다. “나가라, 나가라, 나가라!” 미동도 하지 않는 시신 위로 채찍이 떨어졌다. 그날 밤 그 집에 아무도 없는데 불이 났다. 남들이 불을 끄러 몰려왔어도, 화재 한가운데에서 총 쏘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불이 그 집을 덮쳤는데도, 사람들은 멀리 떨어져서 보고만 있었다. 아이드 빈 쿠사이프가 황급히 달려왔다. 사람들이 그를 책망했다. “어찌하여 탄창을 집 안에 두었는가?” 아이드 빈 쿠사이프가 말했다.
20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탄창은 지금 제가 가지고 있어요. 집 안에 두지 않았어요.” 알고 보니 총소리는 건조시킨 레몬 열매들이 터지는 소리였다. 샤르자 요새 샤르자 요새는 우리 집에서 남쪽에 위치한다. 요새와 우리 집을 사이에는 도시의 상가 지역으로 이어지는 큰길밖에 없다. 우리 마즐리스 창문에서 내다 보이는 이 도로로 사람들이 사고 파는 상품을 실은 차량들이 밤부터 새벽까지 지나다닌다. 소총을 멘 경찰관이 방문자를 안내하다가 걸음걸이를 멈추면 앞으로 나가게 하면서 요새 안으로 인도한다. 고개를 숙인 채 부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요새에서 나오는 사람도 있고 잘 차려입은 복장에 셰이크에게 할 말을 가다듬느라 생각에 잠겨 천천히 걷는 사람도 있다. 흡족한 웃음을 띠고 나오면 셰이크로부터 넉넉히 받은 것이고 찡그린 얼굴로 나오면 그는 민원을 성사시키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하루 종일 이런 광경을 지켜본다. 샤르자 요새는 사각형 모양의 건물로서 네 종류의 핵심적인 공간들이 있다. 네 종류 중 첫째는 회의실이다. ‘알구르파’는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마즐리스로 사용되며 요새의 남동부에 위치한다. 다음은 ‘알마슈라프’로서 요새의 남서쪽에 면한 사각형 모양의 탑이다. 보초의 초소로 사용된다. 요새 북서쪽으로는 ‘ 알쿱스’가 있다. 알쿱스는 원통형 탑이며 역시 보초들이 사용한다. ‘알마흘루사’는 거대한 탑인데, 이름이 그것의 이상한 구조와 어울린다. 마흘루사의 윗층은 경계 초소이고 아랫층은 무시무시한 감옥이다. 요새의 앞 광장에 면한 정면부에는 반들반들한 반구형 (半球形) 청동 못대가리들로 장식된 큰 대문이 보인다. 정문과 마흘루사 사이에 오후가 되면 생기는 그늘 자리에 팔걸이가 달린 커다란 나무 벤치가 놓여 있다. 나무 벤치의 양쪽 끝에는 위로 통하는 목재 계단이 있다. 또한 목재 바퀴가 달린, ‘알락까스’라
21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불리는 커다란 대포와, 그보다 작으며 역시 목재 바퀴가 달린 대포가 있다. 요새 정문 왼편으로는 유치장이 있는데, 광장을 향해 창문이 나 있어서 수감자가 창을 통해 가족과 얘기를 나눌 수 있다. 천장과 창 사이에는 조그만 환기구가 있다. 유치장 문은 대문 안쪽의 ‘ 알이스바흐’라는 홀로 개폐된다 이 홀은 경비가 삼엄하다. 예전에 감방에 한 죄수가 수감되어 었었다. 그는 절도 전과가 여럿이어서 이전에 범한 절도로 오른손이 절단된 상태였다. 그가 어느 날 밤 작은 청동 대포를 훔쳤다. 손이 하나밖에 없는 데다 몸집도 작은 그가 대포를 들고 윗쪽 환기구를 통해 나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그는 탈주했다. 사람들이 그를 추적하여 발견했을 때 그는 훔친 대포를 부둥켜안고 풀더미 속에 숨어 있었다. 유치장 다음으로 물품 창고가 있다. 통치자의 집사 중 이븐 칼반이라는 사람이 창고를 관리한다. 그는 등유와 숯과 몇몇 식료품을 통치자 가문의 가정에 공급한다. 그 다음이 주차장이다. 이 주차장은 마구간이 있던 자리에 지어졌다. 이러한 장소들 위에 셰이크가 집무하는 사무실이 있다. 그 앞에 노천 옥상이 있고, 천장이 있는 복도가 이어진다. 이 모두는 요새 앞 광장을 향해 있다. 저녁이 되어 셰이크 술탄의 형제들과 그들의 아이들이 식사하러 모일 때에도 사람들이 하나둘씩 샤르자 요새에 운집하여 1945년 막바지에 이른 전쟁 소식을 들었다. 요새의 윗층 방 창문을 통해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왔던 것이다. 사람들의 절반은 미국과 영국의 연합국을 지지했고 나머지 반은 독일과 이탈리아 등 추축국 편이었다. 이라크인 아나운서 유누스 바흐리의 탁한 음성으로 들리는 독일 방송의 뉴스는 연합국 지지자들을 분노케 했고 마찬가지로 샴 지역 출신 아나운서 무니르 샴마가 보도하는 영국 비비시 중동방송 뉴스는 추축국 지지자들을 화나게 했다. 우리는 요새 앞 광장쪽으로 난 창문 너머로 양 진영 간의 싸움을 구경하곤 했다.
22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요새 내의 나머지 부분을 보면, 남쪽으로 셰이크 사끄르 빈 술탄의 어머니가 살았고 북쪽은 셰이크 사끄르 빈 술탄 내외와 자녀들의 거처였다. 요새 전면에 큰 건물이 있는데 절반은 창문까지 다 지어졌고 절반은 지붕만 있다. 그래서 이 건물을 ‘알사바뜨’(12)라 한다. 많은 베두윈(13)들이 그 곳에 셰이크의 식객으로 머물렀다. 알사바뜨의 북쪽 부분은 세면장이고 남쪽 부분은 낙타가 앉아 쉬는 장소였다. 요새와 알사바뜨 사이에 두껍고 윗 부분이 숯처럼 검은 기둥이 세워져 있어서 절도범 등 법을 어긴 범죄자들을 묶어놓았다. 이 기둥을 ‘회개의 통나무’이라고도 한다. 도둑이나 범인이 기둥에 묶여 있으면 우리 같은 소년들이 기둥 주위에 둥글게 모여들었다. 도둑이나 범인에게 채찍형이 가해질 때면 우리 또래의 소년들은 기둥의 검은 부분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어떤 소년이 말했다. “기둥 윗 부분에 불이 붙어 도둑이 묶여 있는 아래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하면 도둑은 불이 가까이 온다는 것을 알고 곧바로 자백하는 거야.” 내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매일같이 여기서 처벌 장면을 보는데, 불이 붙는 걸 본 적이 없어. 그리고 저 시꺼먼 부분은 우리가 세상을 알기 전부터 있었어.” 내가 아버지에게 기둥의 시꺼먼 부분에 대해 물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얘기해 주셨다. “네 할아버지인 셰이크 사끄르 빈 칼리드 알까시미 통치자 시대에 피부가 검고 앞을 보지 못하는 ‘바시두흐’라는 사람이 샤르자의 알 알리 동네에 살고 있었단다. 남쪽으로부터 ‘수하일리’라고 하는 폭풍이 몰치던 날 바시두흐가 지팡이를 짚고 생선 시장으로 갔어. 어부들한테 생선을 사려고 말이다. 그 사람이 대추야자나무 잎과 두꺼운 포대 천으로 지어진 허름한 천막집으로 돌아와서 천막
23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안에서 생선을 구우려고 불을 피웠어. 그 때 천막에 불이 붙어 바시두흐는 불에 타 죽고 말았단다. 불은 바시두흐와 천막집에 그치지 않고 대추야자나무 잎으로 지은 집을 거쳐 서쪽으로 번졌어. 불길이 집 위에서 춤을 추더니 무게가 가벼운 물건들을 하늘로 날려보냈어. 화염이 집들을 집어삼키고 외양간에 있던 소와 양들은 숯덩이가 되었어. 숯이 되거나 불덩이가 되어 날아다니던 물건들은 강풍에 의해 샤르자만 방향으로 옮겨갔어. 그런데 샤르자만의 해안 근처에 물 속에서 진주를 채취하는, ‘갈리브’라는 이름의 배가 있었어. 배 주인은 이븐 마드쿠르였지. 강풍이 몰고 온 불덩이 가운데 하나가 돛대 꼭대기에 붙었어. 불길이 돛대 위를 삼키고는 밑으로 향하기 시작했어. 갑판 위에 불길이 사람 키 정도 또는 그보다 좀 더 높은 곳에 다다른 바로 그 때 샤르자 통치자이던 셰이크 알까시미가 알사이프 도로 쪽에서 말을 타고 나타나셨다. 셰이크는 배에 돛대를 고정하는 밧줄을 끊은 후 불이 남아 있던 돛대를 바다로 던지라고 명하셨다. 바닷물로 불을 끄려는 것이었지. 그리고 타다 남은 돛대를 요새 앞으로 가져다가 세우라고 명령하셨다. 도둑들과 범죄자들을 묶어 두기 위해서지. 그래서 그게 회개의 통나무야.” 과거에 돛대의 그을린 부분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진주를 따지 않으려고 꾀병을 부리는 잠수 어부들을 묶어놓는 곳이었다. 어부들은 종종 나타나 사람을 공격하는 상어를 두려워하고 호흡 부족을 겁냈다. 어부들은 잠수하고 나와서는 바다 밑에 진니가 산다고 상상하며 헛소리를 하거나 물속에서 수압이 높아 고막이 아프다면서 귀 밑에 불도장을 찍기도 했다. 오늘날 돛대는 범인들에게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결박해 놓고 채찍형을 가하는 도구가 되었다. 회개의 통나무 남쪽에 포구가 대추야자나무 줄기에 거치된, 실제로 단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는 구식 대포들이 전시돼 있다. 국빈 방문 행사나 명절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포탄을 발사할
24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때 사용되는 대포는 목재 바퀴가 달린 작은 대포였다. 예전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우드 빈 압둘 아지즈 알 사우드 왕자가 샤르자 공항을 경유하여 인도로 가는 도중에 귀빈 자격으로 샤르자를 방문했을 때였다. 샤르자의 통치자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가 커피를 함께 하자고 왕자를 요새 마즐리스로 초대했다. 발포를 담당하는 경찰에게 왕자가 요새 정문 앞에서 하차하거든 예포를 한 발 발사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경찰은 동료들과 같이 사우디 왕자가 하차하기로 된 정문 근처의 작은 대포를 멀리로 이동시키기 위해 힘껏 밀었다. 그러나 대포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경찰들이 우리를 불러 도와달라고 했다. 우리들은 그 때 요새를 내방하는 귀빈을 보기 위해 모여 있었다. 우리들 옆에 어른 두 사람이 있었다. 하마사 시의 셰이크 라시드 빈 하마드 시장과 형제간인 셰이크 무함마드 빈 하마드 알샤미시의 동행자였다. 셰이크 무함마드 빈 하마드 알샤미시는 그 때 내 아버지의 빈객으로 와 있었다. 그와 두 동행자는 우리 집의 특별 마즐리스에서 머물렀다. 동행자들의 이름은 알하스와 주마이으였는데, 어른 둘이 우리와 힘을 합쳐 밀어도 대포는 움직이기를 완강히 거부했다. 이 때 발포 담당 경찰은 구식 대포 가운데 하나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대추야자나무 줄기에 거치된 대포였다. 결찰은 구식 대포에 포대 천과 화약을 장전했다. 대포 표면으로 녹가루가 흩날리는 상황에서 우리 모두는 대포 주위에 빙 둘러섰다. 경찰은 대포 장전을 마친 후 대포 뒤쪽에 있는 좁은 구멍으로 상당량의 화약을 넣었다. 귀빈이 도착하자 경찰은 대추야자나무 잎 끝에 불을 붙인 후 우리들에게 멀리 떨어지라고 말했다. 경찰이 대포 뒤에 불을 갖다대자마자 폭발했다. 연기 구름 속에 파편들이 날았다. 이 때 주마이으가 쓰러졌다. 파편이 그의 한 쪽 뺨을 찢고 지나가 이가 훤히 드러났다. 영국군들이 일주일에 한 번 낙타 우리에 와서 영화를 상영했다.
25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자신들이 패배한 것은 빼고 승리하는 장면만 보여주었다. 낙타 우리에는 크고 작은 진드기가 득실거렸다. 진드기는 낙타 몸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관객들은 진드기에게 물린 발과 다리를 연신 긁어댔다. 진드기는 몸에서 피를 빤다. 요새의 남쪽에 붙어 있으며 그 서쪽 울타리가 샤르자 성벽의 잔해에 인접해 있는 마구간 문은 알바두우 모스크 광장 쪽으로 나 있다. 나는 마구간 승마장에서 승마 훈련을 받곤 했다. 사촌 형들이 말을 타고 사막으로 나갈 때 승마 코치이던 사이드 알카일에게 나도 같이 가게 해달라고 졸랐다. 그는 내 요청을 받아들였지만 말이 내 말을 듣지 않고 뻗댈까 염려하여 우리 모두에게 시장을 포함한 샤르자 시내 도로를 돌게 했다. 우리가 서부 수산물 시장에 다다랐을 때 여자들이 죽 앉아 온갖 채소를 땅바닥에 늘어놓고 있었다. 열무, 양파, 토마토, 수박, 중동 참외, 바질 등이었다. 내가 탄 말이 여자들에게 아주 가까이 다가갔다. 여자들이 채소를 두고 멀찌감치 몸을 피했다. 말은 발굽으로 수박과 참외를 밟고 채소들을 먹었다. 나는 말을 통제하지 못했다. 사이드 알카일이 급히 달려와 자신의 말로 내 말을 말 무리 가운데로 밀어냈다. 하지만 이번엔 그가 탄 말이 남아 있는 채소 위에서 춤을 췄다. 시장에 있던 사람들이 큰 소리로 떠들며 손을 흔들었다. 이에 말들이 놀라서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다친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이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에게 이 일을 일러바쳤다. 모두들 나를 책망했다. 셰이크는 손해를 본 시장 상인들에게 배상한 후 말이 샤르자 시장과 도로에 다니는 것을 금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27 제2장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
29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는 샤르자의 통치자였고 그의 동생 셰이크 무함마드 빈 사끄르 알까시미는 부통치자였다. 그리고 두 사람의 동생 마지드 빈 사끄르 알까시미는 알아르사 숯 시장에 근무하면서 사람들의 불평을 듣고, 직접 해결하거나 지역의 판사 –‘법’이라고들 불렀다- 에게 넘겼다. 당시 판사는 셰이크 사이프 빈 무함마드 빈 미즐라드였다. 그는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판사실에서 재판을 진행했다. 그는 판결 내용을 셰이크 술탄에게 보내 그로 하여금 판결을 확인하고 집행하게끔 했다. 통치자 수하의 장관은 이브라힘 빈 무함마드 알미드파으였다. 그의 임무는 공식적인 대외 관계와 업무 연락에 국한되었다. 명절날 그날 해가 질 때 사람들은 일몰 기도를 한 후 초승달을 관측한다. 극도로 조용한 가운데 다음날이 명절임을 공표하는 대포 소리가 울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시장은 명절 준비를 하는 사람과 그냥 구경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어떤 이는 명절에 입을 새 옷을 사고 어떤 이는 무핫신, 즉 이발사에게 가서 제 차례를 기다린다. 손님을 접대하는 데 필요한 ‘푸왈라’,
30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즉 단 과자, 뻥튀기, 바슈마크 등을 사러 오는 사람도 있다. 바슈마크는 빻은 참깨가 주성분인 따히나(14)로 만든다. 따히나는 ‘헤르다’라고도 한다. 단과자를 만들어 판매하는 타이무르씨의 상점 앞에는 눈을 가린 당나귀가 돌리는 연자방아가 있는 상점이 있다. 당나귀는 쉬지 않고 방아를 돌리는데, 이런 당나귀를 헤르다 당나귀라고 한다. 헤르다 당나귀는 속담에도 나온다. ‘이 사람에게 능력 이상으로 과하게 일을 시키지 말라’고 하면 ‘걱정 마. 이 사람은 헤르다 당나귀야’라고 대꾸한다. 명절날 아침이면 사람들은 옷을 잘 차려 입고 예배소로 간다. 예배소는 도시에서 1.5킬로미터 거리에 있고 예배소 안에 설교자가 줄을 맞춰 앉아 있는 사람들을 향해 설교하는 3단짜리 시멘트 설교단이 있었다. 명절 예배와 금요일 예배 때 설교자는 셰이크 사이프 빈 무함마드 미즐라드였다. 그는 목청이 좋았다. 앞쪽 줄에 남자 어른들과 젊은이들이 서는데, 맨 앞에 셰이크 술탄과 그의 형제들, 친척들, 원로들이 자리한다. 여자들 숫자는 많지 않으며 남자들 뒤에 선다. 사람들은 명절 예배가 끝나면 시내로 간다. 샤르자 요새의 경찰은 하얀 싸웁(15)을 입은 사람들이 오는 것을 보고 대포 발사 명령을 내린다. 그래서 대포소리가 들리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샤르자에 명절이 왔구나.” 사람들이 셰이크 술탄에게 명절 축하 인사를 건네기 위해 샤르자 요새로 몰려온다. 셰이크 수하로서 항공기를 지키는 경비단원들도 온다. 이들은 오만 출신으로 ‘알마나크’라 불리는 곳에 있는 항공센터 근처에 살고 있었다. 경비단장의 이름은 나시르 알자이디였다. 이들은 요새 앞 광장에 와서 다같이 노래하고 춤을 추며, 단원 가운데 두 사람이 긴 칼과 방패를 들고 앞으로 나온다. 이어서 칼싸움 장면을 공연한다. 한 사람이 상대를 칼로 찌르고 목을 베어 죽인다. 그리고는 땅에 눕힌다. 끝에 가서 승자는 패자를 칼로 찌르고 한쪽 다리로 일어선다. 아이들은 이
31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장면에서 원을 그려 둥글게 모였다가 공연이 끝나면 사방으로 달려간다. 이집저집을 돌며 명절 선물을 달라고 하는데, 선물은 작은 액수의 돈이다. 명절날 저녁이면 어른들은 물론이고 젊은 남녀와 어린이들이 모두 잎이 무성하고 넓게 그늘이 지는 롤라(16) 나무로 모여든다. 사람들은 롤라 나무의 굵은 가지에 밧줄을 매어 그네를 만들고, 소녀들이 그네 위에 두 줄로 앉는다. 소녀들은 각자 발가락들을 맞은 편의 소녀들이 앉아 있는 밧줄 위에 맞물리게 올린다. 그러면 소녀 여덟 명이 탄 그네가 된다. 청년들이 조심조심 그네를 밀어 올린다. 롤라 나무 아래에서는 달콤한 과자와 견과류를 판매한다. 샤르자의 통치자는 커다란 의자에 좌정하고 그 주위에 친척들과 유력 인사들이 앉아 명절 축하 인사를 받는다. 그 옆에서 ‘이얄라’ 춤을 춘다. 금요일에 셰이크 술탄은 집이나 요새에서 나와 금요 예배가 열리는 모스크로 간다. 소총을 든 경찰 한 명이 셰이크 앞을 경호하고 셰이크 뒤로 측근들이 따른다. 셰이크는 ‘캇타라’라고 불리는, 휘어진 황금 검을 찬다. 알팔라즈 농장 나의 큰아버지인 셰이크 술탄이 부르즈 쿠잠 동쪽에 위치한 ‘ 알팔라즈’ 지역에 대규모 농장을 세우고 그 근처에 휴게 시설을 지었다. 농장엔 우물 두 개가 있고 그 위로 펌프가 하나씩 설치되어, 각각 퍼올린 물을 커다란 풀장 두 곳으로 보낸다. 서쪽 풀장은 목욕용으로서 그 위로 페르골라가 지어져 재스민 나무가 지붕을 뒤덮었다. 목욕하다 보면 머리 위로 재스민 꽃이 떨어지곤 했다. 셰이크 술탄은 종종 자신의 형제들과 아이들을 이끌고 농장으로 갔다. 그는 차에 형제들을 태우고 아이들은 따로 버스 같은
32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대형차를 타게 했다. 아이들은 농장 가는 길과 오는 길에 노래를 부르곤 했다. 셰이크 술탄, 라스 알카이마 문제를 중재하다 1948년 2월 첫 주 어느 날 아침, 나는 누이인 나이마와 함께‘ 알나킬’ 지역과 라스 알카이마 시를 연결하는 도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앉아 있었다. 이 언덕은 황금색이 눈부신 ‘알카르란’ 언덕의 일부이다. 나와 나이마는 그날 새벽에 내린 비에 젖은 모래로 집을 짓고 있었다. 우리는 찬란하고 화려한 색깔의 야생화를 꺾어다 집을 꾸몄다. 지역 전체가 조용했다. 아침의 산들바람이 차가운 손길로 우리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동쪽을 바라보면 시선이 멀리 뻗어간다. ‘ 사므르’(17) 나무들이 점점이 박힌 평원은 북쪽으로 이어지는 높은 산맥의 기슭에서 끝난다. 산맥은 서쪽으로 평원 양쪽에 있는 초록색 띠와 만난다. 초록색 띠는 높다란 대추야자나무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다.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라스 알카이마만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만 양쪽에 라스 알카이마 시가지가 펼쳐져 있다. 동쪽으로는 ‘ 알무아이리드’ 마을이 있고, 라스 알카이마만의 호수가 남쪽으로 알카르란 사구를 향해 뻗어 있다. 키 작은 능수버들과 가프 나무로 뒤덮인 습지가 호수와 사구 사이를 가로지른다. 가프 나무는 사구에 더 가까이 있다. 소들이 종종 ‘샤르흐’ 물을 마시러 사구로 오는데, 샤르흐는 빗물이 모이는 수조 모양의 물웅덩이이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남쪽으로 벽돌로 지어진 요새가 있었다. 그것은 셰이크 술탄 빈 살림 알까시미의 요새라고 불리는데, 요새의 흉벽에 라스 알카이마로부터 다가오는 사람들을 겨냥하여 소총 2정이 거치되어 있었다. 이 때 흉벽에서 소리가 났다.
33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정지, 정지.” 라스 알카이마 쪽에서 남자 한 명과 여자 네 명이 우리가 앉아 있는 언덕으로 올라오다가 땅바닥에 넘어졌다. 일행 중 남자가 울면서 소리쳤다. 그의 쉰 목소리와 무시무시한 용모가 우리를 겁에 질리게 했다. “죽음을 피해 왔더니 또 눈앞에서 죽음을 만나는구나.” 성채 흉벽으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수쿤, 수쿤(수쿤은 그의 이름이었다). 자넨 이제 살았어.” 수쿤이 말했다. “아, 사끄르, 아, 칼리드.” 수쿤은 라스 알카이마의 통치자인 셰이크 술탄 빈 살림 알까시미의 두 아들 사끄르와 칼리드의 어머니인 셰이카(18) 아이샤 빈트 사끄르 알까시미의 시종이었다. 여자들이 우리 집에 와서 얘기해 준 바에 따르면 라스 알카이마에서 셰이크 술탄 빈 살림 알까시미의 사촌형제인 셰이크 사끄르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에 의해 정변이 일어났다. 그리고 여자들은 사끄르와 칼리드가 라스 알카이마에서 탈출한 후의 소식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나는 집 밖에 서서 자동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자동차보다 차 엔진 소리가 먼저 도착했다. 우리 차였다. 아침에 압둘라 반다리가 운전하여 차를 타고 나갔던 아버지가 내리셨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위 누이이자 라스 알카이마의 통치자 셰이크 술탄 빈 살림의 아내 셰이카 아이샤 빈트 사끄르 알까시미의 두 아들 사끄르와 칼리드도 내렸다. 아버지의 경호원 아이드 빈 쿠사이프도 함께였다. 그들은 외부 마즐리스로 들어갔다. 외부 마즐리스는 우리 집으로 사용되는 천막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천막이다.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집으로 가셨다. 거기서 아버지는 그간에 일어난 일을 얘기해 주셨다.
34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셰이크 사끄르[*] 빈 무함마드 빈 살림 알까시미가 라스 알카이마 요새를 차지했다는 소식과 사끄르와 칼리드가 라스 알카이마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두 조카를 구하기 위해 바삐 움직였단다.” 아버지는 셰이크 후마이드 빈 무함마드의 집으로 가서 칼리드 빈 술탄이 거기에 피신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사끄르는 어찌 되었는지 물었다. 사람들은 사끄르가 아침 일찍 오토바이를 타고 라스 알카이마의 집에서 나와 도주했다고 대답했다. 나는 한 오토바이가 그날 이른 아침에 언덕 아래 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것을 보았으며, 라스 알카이마 시로부터 동쪽으로 향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말했다. “그래, 맞다. 사끄르는 캇트 마을에 있는 친구 집에 피해 있었다. 나는 술탄이 본 그 오토바이의 경로를 탐문하여 사끄르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리하여 그들이 지금 이 마즐리스에 와 있는 것이다.” 사끄르와 칼리드가 마즐리스에 와 있다는 소식이 우리 집 전체에 알려졌다. 사끄르와 칼리드의 어머니인 셰이카 아이샤를 모시는 여자 시종들의 자그라다(19)가 집 안에 울려퍼졌다. 여자들은 마즐리스로 앞다퉈 달려와서 사끄르와 칼리드의 손에 키스했다. 아버지는 사끄르와 칼리드를 어머니이자 자신의 누나에게 데려가겠다고 하셨다. 내가 말했다. “저도 같이 갈 게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이 아이한테 옷을 가져다 줘요.” 정오 무렵이었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자동차를 타고 샤르자로 [*] 셰이크 사끄르 빈 무함마드 빈 살림 알까시미의 어머니는 핫사 빈트 사끄르 알까시미이고 나의 아버지 무함마드 빈 사끄르 알까시미의 배 다른 여자형제이다.
35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향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앞자리에 앉았다. 뒷자리엔 셰이크 술탄의 아들인 사끄르와 칼리드, 아버지의 경호원인 아이드 빈 쿠사이프가 앉았다. 또한 일행으로 아버지의 손님인 자을란 출신 오만인이 타고 있었다. 그는 온화하고 선량하고 우스갯소리를 잘하며 늘 웃고 웃기는 사람이었다. 그는 갈색 피부에 흰 턱수염이 났으며 흰 싸웁을 입고 허리에 은제 단도를 차고 머리에 모직 두건을 썼다. 아버지와 여동생의 두 아들은 큰일을 겪은 뒤여서 탈진해 있었다. 자동차도 다쳤는지 신음소리를 내고 좌우로 기우뚱거리며 모랫길을 달렸다. 자을란 출신 오만인이 나와 아버지가 앉아 있는 자동차 앞부분과 자신이 타고 있는 뒷 좌석 사이의 창으로 다가왔다. 그가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했다. 아버지는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화를 나누셨다. 샤르자 가는 길에 자동차는 오후 기도 시간 말고는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렸다. 우리는 그날 오후에 샤르자에 도착했다. 자동차가 우리 집 앞과 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인 숙모 집 앞에서 멈춰 섰다. 아버지는 운전사 압둘라 반다리를 불러 두 조카들을 어머니인 여동생에게 데려다 주라고 지시하셨다. 아버지는 나와 자을란 출신 오만인과 함께 우리 집의 일반 마즐리스로 갔다. 경호원 아이드 빈 쿠사이프가 뒤따라 왔다. 그런데 집에 사람이 없는데도 문이 열려 있었다. 아버지는 살민이 안에 와 있는 게 틀림없다고 하셨다. 살민 빈 수와일람은 오만의 나클 지역 사람으로서 나의 아버지가 사서 해방시킨 노예였다. 그는 해방된 뒤에도 우리와 함께 살고 싶어했다. 아버지가 부르셨다. “살민, 살민.” 나도 함께 외쳤다.
36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살민, 살민.” 살민이 왔다. 한 쪽 다리 만으로 걷고 한 쪽 다리는 끌고 있었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살민에게 말했다. “술탄이 목욕할 물을 데워서 마즐리스 옆의 화장실에 갖다 놔라.” 아버지는 경호원 아이드 빈 쿠사이프에게 이발관에 가서 이사 나마쿠를 불러오라고 명하셨다. 그러고 난 후 아버지는 나를 숙모 –아버지의 둘째 부인- 집으로 데려갔다. 그 곳에 나의 누이들과 남동생 후마이드가 있었다. 아버지는 씻은 후 옷을 갈아 입었다. 그리고 비누와 수건을 들고 나와 함께 마즐리스로 향했다. 거기에 이발사 이사 나마쿠는 아직 와 있지 않았다. 아버지는 우리 집 앞 광장을 향해 나 있는 마즐리스 창문으로 바깥을 보셨다. 이발사 나마쿠가 이발기구가 든 가방을 들고 서둘러 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걸음을 더 빠르게 옮기지 못했다. 양쪽 다리가 바깥으로 휘어 걸을 때면 몸이 시계추처럼 뒤뚱거렸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이사, 많이 늦었네.” “안녕하세요, 셰이크 무함마드. 먼저 온 손님이 있었습니다. 머리를 반쯤 깎았는데 어떻게 그냥 오겠습니까?” “얼른 술탄의 머리를 깎게.” 이사 나마쿠가 이발도구를 바닥에 내려놓고 천으로 내 몸을 둘렀다. 그리고 가위로 내 머리를 한 다발씩 잘라 내 가슴 위의 천에 놓았다. 나는 잘 매만져서 포도송이처럼 관자노리에 내려뜨리던 머리카락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은 머리카락이 있는데 나만 까까머리니, 이제 어떻게 친구들을 만나나? 눈물이 났다.
37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아버지가 말하셨다. “이사, 애 머리에 상처를 냈잖나?” 이사 나마쿠가 말했다. “아직 면도날을 쓰지도 않았어요. 그저 가위로 자르는 중인데요.” 나마쿠가 면도날로 내 머리를 밀 때 여기저기 상처를 냈다. 살민이 일어서서 따뜻한 물로 내 몸을 씻어주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몸에 비누칠도 하게.” 아버지는 나를 잡고 물기를 닦은 다음 내가 옷들을 넣고 가져온 가방에서 싸웁을 꺼내 입혀주셨다. 나는 머리에 빨간색 두건을 둘렀다. 일몰 예배 후에 나는 아버지와 함께 요새로 갔다. 큰아버지인 셰이크 술탄이 집무실에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가르쳐 주신대로 큰아버지에게 코를 맞대는 인사를 했다. 큰아버지는 나를 끌어안았다가 바로 옆에 앉혔다. 서재에는 아버지와 큰아버지, 그리고 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큰아버지 셰이크 술탄에게 라스 알카이마에서 일어난 사건을 설명했다.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는 중에 한 경찰이 들어와 말했다. “라스 알카이마의 통치자 셰이크 술탄 빈 살림 알까시미께서 요새 문 앞에 와 계십니다.” 큰아버지가 안으로 모시라고 명한 후 라스 알카이마 통치자를 맞이하러 일어났다. 통치자는 자신의 두 아들 사끄르와 칼리드와 함께였다. 큰아버지는 세 사람 모두를 서재로 들어오게 했다. 이로써 가족회의가 열렸다. 셰이크 술탄 빈 살림 알까시미는 아버지와 큰아버지의 매부이고, 따라서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사끄르와 칼리드의 외삼촌이 되며, 이 둘의 아버지가 셰이크 술탄 빈 살림 알까시미였던 것이다.
38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셰이크 술탄 빈 살림 알까시미는 날개가 부러진 처지였다. 그래서 라스 알카이마의 통치자 자리를 되찾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해달라고 아버지와 큰아버지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내가 셰이크 술탄 빈 살림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몇 주 전에 라스 알카이마에 가서 셰이크 술탄을 방문하는 아버지를 따라갔었다. 그날 베두윈들이 알카르란에서 아버지에게 와서 불만을 토로했다. 그들은 아버지에게 셰이크 술탄 빈 살림이 알지리 지역에서 자라는 가프 나무들을 베고 있다고 알렸다. 특히 두 줄기로 갈라진 나무들을 베어 쿠웨이트의 바움선(20)의 선미에 사용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원거리 항해용 바움선은 돛이 아니라 엔진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나는 낙타 두 마리 사이에 커다란 나무를 묶고 끌어 운반하는 광경을 내 눈으로 본 적이 있다. 셰이크 술탄 빈 살림은 내 아버지의 충고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다시 알카르란으로 가서 셰이크 술탄 빈 살림과의 사이에 있었던 일을 베두윈들에게 설명했다. 셰이크 술탄 빈 살림은 자신의 손위 누이인 셰이카 파띠마 빈트 살림 알까시미가 라스 알카이마 요새에 있던 시간에 셰이크 사끄르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가 그리로 들이닥쳤다고 나의 큰아버지 술탄 빈 사끄르에게 말했다. 셰이카 파띠마는 그 때 요새 1층에 있었는데 베두윈들이 들어오자 그들한테 매국노라며 고함쳤다. 셰이크 술탄 빈 살림은 셰이크 후마이드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의 집에 있다가 이 사실을 자신의 아들인 칼리드에게서 듣고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셰이크 사끄르 빈 무함마드가 베두윈들에게 1층엔 자신의 고모님이 계시니 무례하게 들어가지 말고 요새 입구와 윗층만 점거하라고 명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셰이크 술탄 빈 살림은 당시 자신의 누이를 요새에서 빼내 샤르자로 데려온 다음 라스 알카이마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큰아버지 셰이크 술탄은 라스 알카이마로 직접 가서 셰이크 사끄르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를 만나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아버지는
39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셰이크 후마이드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에게 편지를 보내 라스 알카이마 요새에 계신 자신의 당숙모 셰이카 파띠마 빈트 살림을 샤르자로 송환해 달라고 요청하겠다고 약속했다. 셰이크 술탄 빈 살림은 자신의 자동차가 라스 알카이마로 출발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용무가 담긴 편지를 써서 셰이크 술탄 빈 살림의 경호원에게 건넸다. 알라미스라는 이름의 이 경호원은 아버지의 편지를 셰이크 후마이드 빈 무함마드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가 있겠으니 아버지께 나를 알카르란에 내려달라고 청했다. 아버지가 승락했다. 나는 자동차 앞좌석에 앉았다. 운전은 우까브라는 운전사가 했다. 알라미스는 뒷좌석에 자리했다. 자동차는 천장이 없었고 뒷자석에 자루가 몇 개 있었으나 그 내용물이 뭔지는 알지 못했다. 샤르자를 출발한 때는 밤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알라미스가 자신이 운전사 옆에 앉을 테니 나더러 뒷좌석으로 오라고 말했다. 체구가 작았던 나는 자동차에 실린 짐 사이에 묻혀버렸다. 잠을 깊이 자다가 알라미스의 말소리를 듣고서야 일어났다. “내려. 집에 거의 다 왔어.” 운전사 우까브가 말했다. “자동차 바퀴 자국이 보이지? 그걸 따라가면 집에 도착할 수 있어.” 나는 차에서 내렸다. 그들은 생각할 겨를도 주지 않고 나를 길 한복판에 버려둔 채 갈길을 갔다. 나는 불빛이 나무들 사이로 사라질 때까지 자동차를 지켜보았다. 밤은 캄캄했다. 이슬람력 3월 그믐 무렵이었으므로 달이 뜨지 않았다. 우리 집까지의 거리는 1킬로미터 정도이고, 살림 빈 카미스 알수와이디 외삼촌네 말고는 동네에 집들이 거의 없었다. 사실 그는 아버지의 외삼촌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외삼촌이라고
40 나 자신의 이야기 (전반부) 불렀다. 그리고 외삼촌네 근처에 여자 둘이 사는 작은 집이 있었다. 두 여자는 다위 부족의 샤끄루흐와 하므루흐였다. 이 집들은 모두 언덕 꼭대기의 성채 부근에 위치했다. 나는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했다. 가까운 곳에서 늑대가 울었다. 무서웠다. 며칠 전 밤에 늑대들이 샤끄루흐의 양 우리에 들어가 한 마리를 물어갔다. 나는 양처럼 될까봐 겁이 나서 온 힘을 다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몇 차례 넘어진 끝에 집에 도착하여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가 놀라서 천막 문을 열었다. “어떻게 왔니? 자동차 소리를 못 들었는데.” “나를 큰길에서 내려줬어요. 거기서 여기까지 뛰어왔어요.” “천벌 받을 인간들. 동네에 늑대가 천지구만.” 다음 날 나는 집에서 나가지 않았다. 친구들을 만나면 내 알머리가 보일까봐 그랬다. 친구들은 베두윈 아이들로서 머리가 길었다. 제일 나이 많은 친구는 마슈룸이고 알자지라 알하므라 출신 청년 알자아비도 있었다. 우리는 날마다 만났다. 우리는 산비둘기 같은 작은 새를 잡기 위해 직접 대추야자나무 가지로 만든 활과 끝에 바늘을 단 화살을 가지고 다녔다. 우리는 마슈룸의 부싯돌로 불을 지폈다. 빙 둘러앉아 지푸라기를 놓고 쇳조각을 돌에 부딪힌 다음 입으로 바람을 불어 불을 붙이는 것이었다. 우리는 메뚜기, 도마뱀, 날쥐, 새 등 우리가 잡은 것들을 무엇이든 구워 먹었다. 우리는 아버지가 하일 -하일은 초록색 띠의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부근의 알살리히야에서 빗물로 재배하는 밀밭을 다니면서 새총으로 밀 이삭을 먹는 새들을 쫓았다. 며칠 후 아버지가 샤르자에서 공구와 총알을 가지고 왔다. 다음 날 올 예정인 큰아버지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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